두 가지 상관없는 이야기가 동시에 떠오른다.
@llngo: 나는 "설명서"가 있는 레고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세살부터 레고를 조립하던 딸(6)은 이제는 레고가 자유자재다. 창의성을 발휘하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레고인데,정해진 대로 만드는 것이 뭐가 재미있나 싶겠지만 과정으로써 그 경험이 대단히 중요하다.
@llngo: 누군가가 반듯하고 옳은 것이라며 무언가를 들고 나오기 시작할 때에 그 때가 바로 독재의 시작이다. 결국은 시간을 들여가며 사람을 믿는 수 밖에 없다. 생각이 다른 저 들을 너무 미워하지 말고, 기회다 싶어도 돌을 들지는 말자.
야심이 있는 도시계획가라면 하얀 종이만 봐도 심장이 두근두근 거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갑자기 텅텅 비어있는 1400년의 서울을 만난다면 그들은 그 그림이 완성되는 것을 기다릴 수나 있을까.아마도 그들이 그리는 "이상적인" 서울에는 교통체증도 환경오염도 주택부족도없고 조망권분쟁도 강남강북격차도 달동네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심시티를 해 본 사람은 안다. 처음 빈 땅이 눈 앞에 펼쳐졌을 때 풍력발전소가 돌아가고 녹음이 우거진 미래도시를 떠올리며 도시를 만드는 일은 무의미하다. 우선은 공장 옆에 가까이 주택을 지어야 하고 쓰레기 처리장과 쇼핑몰을 함께 조닝해야 하고 다소 시민들의 불만을 무시해가면서라도 도로 확장에는 신중해야 한다.
흔히 박정희대통령이 사심없이 선을 그엇다. 훌륭한 사람이다. 라는 말을 한다. 지도에 자를 대고 선을 그어 경부 고속도로를 만들었다는 등등. (그러면 대전은 왜 찍고가냐?)천안・아산역과 같은 웃지못할 역 이름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며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가 흔하디 흔한 유혹에 넘어간 그저그런 독재자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심시티에 비유하자면 "빨리돌리기"를 일삼는 초보유저다.
마을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최소한 20년은 필요하다. 대지계획을 세우고 도로체계를 정비해 어떤 형태가 되었든 택지가 개인들에게 분배(분양)가 된다. 집을 짓다보면 누구는 크게 누구는 싸게 누구는 높게. 저마다 원하는 것이 다르다. 균등하고 이상적으로 계획된 택지라도 그것들을 만족시키며 동시에 남향이라던지 시대에 따라 차고나 태양광발전이나 자동화된 하수처리장이며를 적용해 나가야한다. 소위 "보수"들은 "누구나 넓은 집 좋아라 하잖나?" 에서, 그리고 "공정한 기회를 줬으니 능력되는 사람이 한강 조망권 독차지 하는 건 어쩔수 없자나?" 로 이어지는 "정답"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 과정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개인에게 있어서 주거라는 것은 그보다 훨씬 작은 범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환경에 기가막히게 적응을 한다. 반대로 아주 작은 것으로 그것을 평가하기도 한다. 오토록을 걸어놓고 세번 씩이나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가는 것은 견디면서도 콘센트 위치가 맘에 안들면 잠도 안온다. 자기집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한대도 공용 골목에 세워진 옆 집 세발 자전거때문에 도저히 출근을 못하는 사태도 벌어진다. 100미터 떨어진 주차장을 이용하면서 3미터 더 먼 곳에 세우라고 하면 멱살을 잡고 싸우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오래된 주택지의 변화과정을 보면 그런 사소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왔는지가 고스란히 보인다. 사람들은 부딪히는 곳에서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줄이는 지혜를 쌓아 왔다. 나라와 개발사가 멋대로 그것에 개입해 "이상적인" 주거를 제안하는 일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무식한 일인지는 소위 "용산사태"가 현재 진행형으로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재개발은 유혹이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밖에서 보고 있자니 다 밀면 좋아 질 것만 같다. 애초에 길은 넓었어야 했다. 전신주는 땅에 묻었어야 하고, 동네 전체에 무선기지국을 세우면 집집마다 여비의 유선은 필요가 없다. 이제는 뭔가 정답을 알겠다 싶다. 하수처리용량이며 지역발전소며 인구추이에 인구구성도 조절이 가능할 것만 같다...고령화에 맞추어 보도를 정비하고 마을버스노선을 정하고 공원도 적당히 배치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 환상의 연장선에 있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기업의 대규모 자본에서 독립된 한겨례 신문이 이상적일 것 같았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엠비씨뉴스를 보면서 뉴스타파가 숨통을 트여줄 것 같았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반대편에 선 것들은 또한 그 문제의 테두리안에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다. 만약에 문재인이 당선되고 "진보"가 잘난 것을 보여주겠다며 사회통합의 본보기로 윤창중을 대변인으로 삼았다면 어땠을까. 말도 안된다고? 박근혜대통령이 처음에 인사에서 얼마나 난항을 겪었는지를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일은 아니다. 그걸 독선이라고 몰아세운 사람들은 그게 그저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아닌가. 소통의 끝을 보여주겠다며 박근혜의 제안대로 윤창중이 대변인이 되고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원래 윤씨는 저쪽 진영 사람이라고 들고 일어났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가능하다면 혹시 윤씨가 상식밖의 행동을 한 것은 민주당의 사주를 받아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볼 수 있다.(글쎄 얼마를 받으면?)...허허...헛소리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우리가 과연 진실을 보아내고 그 안에서 정답을 찾아갈 수가 있을까?
정답을 말하고자 한다면, 이상적인 목표점을 제시하고자 한다면 삼청교육대를 세울 밖에 도리가 없다. 맘에 안드는 것들은 잡아다 때려서 교육하고 모난 돌은 처내어 훌륭한 대한민국을 만들면 된다. 빨갱이라고 잡아다가 공산당처럼 아오지에 보내는 것이 그들이 "가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한대도 그 가치가 너무도 가치있어 조금의 부작용은 감수하겠다 한대도. 반대할 명분은 없다. 누군가가 선을 긋고 이것이 옳은 것이다 말하기 시작하면 그게 바로 독재다. 역사교육이 잘못되었다. 제대로 된 역사서는 이것이다. 라고 누군가 "잘 된"역사책을 들고 나오면 아. 이제야 나라가 바로 가는 구나.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은가? 독도는 한국땅이다라고 기술한 일본의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기대하는 것과 닮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유혹을 참아야 한다. 시간을 들여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영역안에서 문제를 풀어 나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한다. 국정원 NLL 또 그 많은 것들과, 인터넷 악플과 일베의 문제, 역사 교과서와 6.25를 모르는 학생들...들들들에 대해서 말이다.
멋진 보수를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진정한 보수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말 자체가 이미 신기루와 같다. 만약에 국민 대다수가 표창원을 진정한 보수의 기수라고 생각한다고 치자. 만약에 안철수가 자신의 노선으로 대한민국 신 보수를 자처한다고 치자. 그런데 표창원의 파트너가 친일파의 자손이거나 안철수 당의 대변인이 광주민주화 운동 때 군 지휘관의 자식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세상에 완벽하게 새로워서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한 해결책은 이러한 문제들이 어떻게 "조절"되고 "조정"되어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지를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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